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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중구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중, 1972년 독일 파견 간호보조원으로 독일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3년간 정형외과 병동에서 남성 환자들을 돌보며 공부에 매진한 김영희 대사는 1975년 퀼른대학 예비과정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영희 대사는 이후 강단에 서며 퀼른대학 6백년 역사에서 전공과목을 강의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영희 대사는 독일통일 후 1991, 독일 전문가로 당시 외무부에 특별 채용돼 독일 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부터 공사까지 역임했다. 20059월 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김영희 대사는 세르비아를 포함한 발칸 반도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대해 외교부 내에서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이라며 그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했다. 김영희 대사는 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사 재직 시 유일한 동양여성 대사로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이며 스타대사로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김영희 대사는 공사 재직 시 <독일의 상징 베를린>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고 대사직에서 물러난 후부터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독일 통일의 사회적 성과>, <독일 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 등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인간적이고 따뜻한 외교관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간호보조원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한 외교관 김영희. 그의 직업란 맨 앞에는 아직도 간호보조원이 명시되어 있다.

김영희 대사의 인생에서 간호보조원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내가 인간적이고 따뜻한 외교관이었다고 평가된다면 그것은 바로 간호보조원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서독파견 시절 김영희 대사는 온갖 궂은일을 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간호보조원을 무시하던 간호원들의 태도를 통해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올바른 가치관을 세울 수 있었고,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환자들을 통해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면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가치있는 경험은 이후 외교관으로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체득한 인내심, 강인함, 인간에 대한 배려, 이해 등이 외교관으로 일할 때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를 성장시켰다.

 

 

 

 

 

 

Posted by 대한간호조무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