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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주인공이었던 파독 간호조무사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부족한 노동력으로 광산에서 일할 근로자와 병원에서 근무할 간호인력을 수입하였다. 1966년부터 한국의 해외개발공사와 독일병원협회의 계약체결로 많은 수의 한국의 간호인력이 서독으로 송출되어 외화획득에 앞장섰고, 그 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경제부흥을 이루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간호인력은 1만여명이었으며 이 중 약 절반 수준인 4천1백명이 간호조무사였다.

 

이미 다른 나라 노동자를 채용하여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경험한 독일은 그들의 독일정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3년마다 교체하는 ‘기한부 노동인력 수입계약’을 하였으나 간호조무사 인력은 달랐다.

 

서독 연방정부 및 주정부 측은 한국 간호조무사들의 성실성과 우수성을 인정하여 독일 체류연장을 특별히 무기한으로 허용해 주었다.

 

서독 병원생활의 가장 큰 시련이었던 언어를 극복한 간호조무사는 야무진 한국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독일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서 한국 간호조무사 명성은 자자했다. 근면하고 성실할 뿐 아니라 인간미가 있고 덕성이 있어 간호인력으로서 뿐아니라 친구로서도 모범적인 사람들로 기억되고 있다.

 

약 4천1백여명의 간호조무사 중 2천여명이 정예기술자로 독일에 체류하게 되었으며 친절하고 정성어린 간호서비스로 서독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한국 간호조무사에게만 간호를 받겠다고 할 정도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한 몫을 단단히 해냈다.

 

독일에서 광부를 비롯한 간호조무사들이 보내는 돈은 1970년대 한국경제성장의 종자돈 역할을 했다. 계약조건에 ‘3년간 돌아올 수 없고 적금과 함께 한달 봉급의 일정액은 반드시 송금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연간 5천만 달러로 한 때 한국 GNP의 2%에 이르렀다. 또한 서독 정부는 이들이 제공할 3년 치 노동력과 그에 따라 확보하게 될 노임을 담보로 1억5천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정부에 제공케 한 애국자들이기도 하다.

 

 

 


<파독 간호조무사 송출 인원>

 

 

<파독 간호조무사 사진>
◆ 한복차림으로 병원 관계자와 기념촬영한 파독 간호조무사    

 

 


◆ 서독에 진출한 간호조무사들이 현지 병원에서 한복을 입은 채 교육받는 광경

 

 

Posted by 대한간호조무사협회